여행 탐구생활/제주

7080, 그때 그 시절 부모님의 추억을 떠올려보다-선녀와 나무꾼 박물관

꼬양 2009. 11. 14. 13:02

가슴 속에 아련한 추억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갑니다. 그리고 그 상실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매일 매일을 질주하고 있죠.

빠른 것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옛 생활의 느림과 여유, 그 속에서 묻어나는 잔잔한 미소를, 그리고 행복을 이곳 선녀와 나무꾼 박물관에서 찾아봅니다.

 

 

 

눈이 소복히 쌓인 들. 한 겨울날, 엄마, 아빠는 추운지도 모르고 눈 쌓인 밭을 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하죠.

그 시절 그때의 놀이기구는 연, 팽이... 아주 소박한,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이죠.

컴퓨터와 게임기에 물들인 지금 아이들에게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어쩌면 끔찍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시절, 부모님에게는 최고의 놀이기구였죠.

 

 

작은 미니어처들이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돌담길을 따라 걷고 싶어지는 느낌까지 드네요.

 

 

이제 도시로 와봅니다. 도시라고 할 것도 없죠.

시간이 흘러, 밭이 있던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고 서서히 농촌은 도시의 모습을 띠어가니까요.

추운 것은 같습니다. 고무신을 신고, 귀마개를 하고 동네 친구들에게 "얘들아, 놀자~" 이리 외쳐보기도 하구요.

길가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할머니는 "시끄러워, 이녀석아! 딴데 가서 놀아!" 이리 쫓아내기도 하죠.

 

 

추억의 이발관.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사셨기에. 서울이발관? 이름은 생소합니다.

하지만, 이 시절 이때의 이발관은 이랬겠지요. 슬레이트 지붕에 나무문.  

 

 

 

북적북적,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시장으로 가봅니다. 한창 흥정이 이뤄집니다. 탐스러운 늙은 호박, 그리고 배추. 가지까지.

지금 시장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시절만큼은 인심은 후했을 것입니다. 인정만큼은 푸짐했던 그 시절이니까요.

 

 

 

박물관을 관람하다보면 간간이 사진들이 보입니다. 실제 그 시절 사진입니다. 50년대 골목길에서 흔히 우리가 말하는 비료포대썰매를 타기도 하고,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아이들 사진이 있습니다. 아이들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네요.

이분들은 이미 우리 엄마, 아빠보다도 연세가 더 많으시겠죠.

 

 

이젠 달동네로 와봅니다. 사회적 위치는 낮으나 사는 곳은 가장 높은. 그리고 달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

바로 달동네. 가파른 경사를 헉헉대며 올라가야 하는. 꼬불꼬불 미로같아 대체 어느 길인지 모를 그 곳.

사는 곳은 비록 불편할 지언정, 마음만은 세상누구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그곳이죠.

 

 

 

골목 사이사이, 넓은 공터는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듯 합니다.

 

 

어릴 적 최고의 운동 아니 놀이. 말뚝박기. 저도 어렸을 적 했었죠. 다들 하지 않나요? -_-; 저만 그런거였나요?

어쨌든, 여자지만 남자아이들과 놀면서 그렇게 자랐습니다. 어렸을 적, 동네 동갑내기가 다섯인데 그 중 저만 여자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나름의 변명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리 씩씩한 걸까요? 어린 시절, 같이 놀던 동네 남자아이들이 떠오르네요.

 

 

 

철푸덕. 말을 타다 떨어지면 이리 기분이 나쁜가봅니다.

 

슬레이트 지붕 위에 놓인, 벽돌, 타이어. 그리고 군데군데 덧바른 시멘트. 바람에 날려버릴 것만 같은 지붕. 

 

그 시절 그때를 추억하는 또 하나. 바로 연탄이죠.

지금도 연탄 보일러는 이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연탄보일러. 예전 외할머니댁이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아주 어릴적 아련한 기억으로 그때를 떠올려보네요.

 

 

 시간은 더 흘러, 점점 건물도 변화되죠. 큰 도로가 놓이고, 점점 도시의 모습을 띠게 되는데.

 

 

도로에는 자동차도 다니고... 하지만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밭 사이사이를, 골목 사이사이를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 때에 비하면 아주 높은! 3층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머, 여기는 어디? 제주 라듸오 학원. 제주도군요.

휴대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봅니다.

 

"엄마엄마, 제주 라듸오 학원이 어딨었어?"

"거기가.. 신제주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아차! 싶었습니다. 엄마는... 제주시가 아닌 북제주군에서 사셨기에. 번지수를 잘못 찾은 꼬양입니다.-_-;

그 시절 그때는 맞으나, 그 건물이 이 건물은 아닌가 봅니다.-_-;

 

 

추억의 데이트 코스. 극장! 그 시절 그때의 극장 모습이 깜찍한 모습으로 재현돼 있군요.

중앙극장. 중앙로에 있었나란 생각에 추측을 해봅니다.

칠성로에 단성사가 있어서, 아빠 손 붙잡고 영화보러 갔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아빠가 영화를 완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표정이 압권입니다. 이 둘은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요?

 

"누나, 나 영화 보고 싶단 말야!"

"웃기지마! 공부나 해!"

"우잉!!!!!!!!!!"

 

이게 아닐까요? -_-; 추측입니다. 추측. 입술이 정말 투욱 튀어나왔습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치마가 너무 짧은데요?"

 

"아녜요! 길이 지켰다구요!!"

 

치마 길이를 재보려는 경찰과 한사코 벗어나려는 아가씨의 신경전. 이땐 이랬다네요~

그래도, 경찰은 좋았겠습니다. 다리 길이 잰답시고, 아가씨 다리 마음껏 봤을거 아녜요-_-^

 

 

 

 

문득 드는 의문. 이 시절도 호프가 있었을까요? 70, 80년대인데... 있었을 법도 하지만.

제주도는 과연?

70, 80년대의 모습으로 풍덩 빠져봅니다.

 

 

  

 

이걸로 추억속 여행은 끝입니다. 아, 박물관 끝이 아니고, 미니어쳐 속 추억 여행은 끝입니다.

작은 미니어처를 통해 부모님의 추억속으로, 그 시절 그때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 하죠. 태어나 처음 부모를 만나고, 형제자매를 만나고, 살아가면서는 이웃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납니다.

그러나 만남이란 반드시 헤어지도록 돼있음에 불교에서 그것을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하죠.

그 시절 추억속으로의 만남.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그때 사람들과 만나지 못할지언정.

아련한 추억속으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계기가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우리세대들에게 있어서 그 추억을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마음으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더 나이가 들어서, 엄마, 아빠가 되었을때도.

머리속에 떠오르는 풍경들, 어릴 적 말뚝박기 하던 모습도 그때되면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있어서 호기심으로 남아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