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충청도

하이얀 그릇위에 푸른 무늬를 그려보다-조령민속공예촌

꼬양 2009. 9. 23. 14:16

 

조령민속공예촌은 도기, 나무, 한지공예 등 3개 동을 중심으로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을 구비 하여 만든 체험 관광지입니다. 

전통적인 민속공예품의 제작과정 및 공예품을 관람 할 수 있고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체험 코스도 마련되어 있구요, 마음에 드는 공예품은 현장에서 직접 구매도 가능합니다.

 

어쨌든... 꼬양은 여기에서 무얼 체험하고 왔느냐하면...

청화백자에 대해 약간 배우고, 약간 체험하고 왔습니다.

 

 

청화백자란?

 

정선된 백토(白土)로 기물을 만들고 그 위에 산화코발트(CoO)가 주성분인 안료를 사용하여 문양을 그린 뒤 장석유(長石釉) 계열의 투명유를 입혀 1,250℃ 이상 되는 고온에서 환원번조(還元燔造)한 백자의 일종.

 

중국에서는 청화(靑華)로, 일본에서는 청화(靑花)로 많이 씁니다.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는 청화백자와 관련하여 청화(靑花)·화자기(畵磁器)·화사기(畵沙器)·화기(花器)·화기(畵器) 등의 용어가 보이구요. 현재는 '푸른색의 무늬'라는 의미에서 청화(靑華·靑畵·靑花) 등의 용어가 통용되고 있습니다.

 

 

쨔잔! 꼬양의 작품은 어디?

보이죠? 정체 불분명한 고양이의 모습-_-; 왼쪽 상단의 작품.

일부러 시선분산을 위해 포커스도 안 맞추고...;;

간만에 붓을 잡았더니 저렇습니다. 

 

도예연구소입니다.

이 안에서 체험이 이뤄지지요.

 

 그릇과 붓.

 

이 붓으로 그릇에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은 자유입니다. 세계지도를 그려도 좋고, 포도를 그려도 좋고, 자신의 얼굴을 그려도 좋고...

 

△ 산화코발트 돌가루

 

이걸 붓에 묻혀서 그림을 그린 다음에  투명유를 입혀 1,250℃ 이상 되는 고온에서 구우면 청화백자가 완성됩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꼬양 웃고 있어요-_-;

근데 그린게 고양인지 여우인지 도통 구분이 안가는데요...

(사진이 흑백인 이윤? 아무 이유 없습니다. -_-;)

분명 그림은 손으로 그렸는데 그릇에 그려진 건 발로 그린 듯 합니다.

 

 다들 작품을 완성해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면...

참 다양하죠.

더 멋진 작품들도 있었는데...

제 카메라 렌즈 속엔 담지를 못했네요. 아쉽습니다.

 

그나저나.. 꼬양.

꼬양의 작품은 왜 저래.

문득 떠오른 말 하나...

조선시대 실학자 박제가북학의에서 이리 말했다죠.

"하나의 자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라의 만사가 모두 이를 닮는다"고요.

 

O. M. G (oh, my god)!!!

그림 그리는 솜씨도 거친데... 이런... ㅠㅠ

그릇을 만드는 솜씨가 거칠면 사람의 마음이 거칠어지고 그 나라 풍속도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제 마음이 거친가요. -_-;

 

 

 

구워서 나오면 이러한 게 됩니다~!

 

하이얀 그릇위에 나름 푸른 무늬를 그려보았겠다..

이젠 서서히 도예연구소 구경에 나섭니다.

 

 

 

 

 

실내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진열돼 있습니다.

체험한 건 청화백자인데...

진열된 건 토기들이네요...

 

 밖으로 나와봅니다.

이끼가 낀 초록선반위에도 아기자기하게 작품들이 진열 돼 있구요.

 

 

그리고 목걸이까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목걸이가 되겠죠^^

수작업으로 만든거니까요~

 

 얘네들은 벌을 받는건지요...

 

 

 작품들을 구경하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봤습니다. 솔방울이 대롱대롱 달려있더군요.

작품과는 관련이 없지만... 너무 운치있던걸요.

 

 

 

 그리고 가마~

여기서 백자를 굽겠죠~

 

 

 

 마당 한켠의 해바라기들.

 

 

한국에서 청화백자가 제작된 것은 조선 초기로 짐작되며 〈효종실록〉 6년(1655)에 태종이 고려의 국자박사로 있을 때 애용했던 청화잔에 관한 기록이 있어 중국 원대의 청화백자가 적어도 고려말에는 한국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15세기경 청화백자는 주로 중국 명대 청화백자의 문양과 기형 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많은 유사점을 보여주지만, 

16세기에 들어서면 문양과 기형에서 중국적인 특징들이 차츰 사라지면서 한국적인 성격이 강해져 회화적인 필치의 초화무늬[草花紋]·포도무늬·칠보무늬 등이 나타납니다.

또한  조선초부터 고급기명이었던 청화백자는 조선 말기에는 왕실뿐만 아니라 일부 민간에서도 향유하게 될 정도로 보편적이 됩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신만의 그릇을 만들어본다는 것. 색다른 체험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아무 생각 없이 봐 왔던 도자들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하며 도자의 역사까지 떠올리게 했던.

저에게는 나름 특별했던 조령민속공예촌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나저나... 그릇이 구워진 다음에 배달되면...

저 그릇에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제 그릇에는 "꼬양" 글씨에 블로그 주소까지 적어놨는데...

머언훗날 시집갈 때나 가져가야겠습니다.ㅎ

미래 남편에게는 이 그릇을  "발로 그린 작품"이라 자랑해야겠어요.ㅋㅋㅋㅋ -_-; 과연 믿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