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나 이거 읽었어-독서

가슴에 못 박힌 고통이란 정말 이런 것...-"박완서-한 말씀만 하소서"

꼬양 2009. 9. 8. 10:26

 참척이라 함은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걸 말하지요.

이 책은 박완서가 자신의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겪은 고통과 슬픔을 글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아들을 잃은 절절한 슬픔을 적은 이 글은 수필도, 소설도 아닙니다. 실제 일기입니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글로써 표출한 했는데요.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아려오게 하는 어머니의 고통이 그대로 글에는 묻어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잃는 고통을 다시 당합니다.  그 아들은 그녀에게 전부였지요. 박완서에게 있어 아들은 기쁨이며, 보람, 희망, 기둥이었죠. 그녀는 신께 간곡한 항변도 하고 푸념도 하고 반항도 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데려간 하늘이 너무 원망스러워 심지어 십자고상까지 내팽개치고 다시 던지구요..

하지만 그런 원망스런 하늘을 의지하며 자신의 고통을 다스려갑니다.

서울을 떠나 수녀원으로 간 박완서는 수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차차 깨달은 바 느낀 바등을 써내려 갑니다. 술로, 눈물로, 수면제로 하루하루를 견디어 가며 따라죽지도 못함을 한스러워하며 신에게 늘 묻습니다.

그녀가 묻는 것은 그 것은 단 한가지였죠.

주님, 당신이 과연 계시다면, 계신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 한말씀만 하소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한 말씀만 하소서"인 듯 합니다.

신의 대답은?

신은 끝끝내 침묵합니다. 저는 종교가 없기에 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리석은 이는 한평생을 두고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기면 곧 진리를 깨닫는다

혀가 국맛을 알듯이

 

-법구경-

법구경에 나왔듯 저 역시 신에 있어서는 숟가락일 뿐이죠.  하지만 종교가 있는 자들은 말합니다. 신은 알게 모르게 간절한 기도에 응답을 한다고요.

그녀는 신에게 애걸해서 안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을 하겠다고 방안을 헤매며 데굴데굴 구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은 응답이 없습니다.

박완서는 자신이 깨닫지 못한 사이에 신이 말씀하셨음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이 표면에 글로 나타나 있지 않을 뿐이란 걸....

자신을 사랑하는 주위의 사람들로 인하여 자신을 추스린 박완서는 그것이 세밀한 신의 음성이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신은 박완서에게 너무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잇달은 고통이 곧 신의 말씀이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들, 느끼는 것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신의 말씀이기에 그녀는 혼동하며 들을 수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많은 말 중에 자신이 들을만 한 것, 들을 수 있는 한 말씀을 원하는 건지도...

확실하게 진리처럼 다가온 한 말씀은 아니었으나 박완서 주변의 일상등을 통해 고통은 그녀와 함께 살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제아무리 독한 저주에도 애타는 질문에도 대답이 없었고, 그리하여 저는 제 자신 속에서 해답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러기 위해선 아무한테나 응석부리고 싶은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요. 제 경우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고통와 더불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그녀는 아들이 없는데도 자신이 너무나도 잘 먹을 수 있단 사실에 구역감이 올라와 먹은 걸 변기에 토하는데, 이때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밤새도록 몸부림 치며 구해도 얻어낼 수 없었던 응답이 하필 변기 앞에 무릎꿇고 앉았을 때 들려온 걸 뭐였을까요...

 

그리고 서서히 자신은 홀로서기를 준비합니다.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우리말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고, 서둘러 귀국을 합니다. 그 후 서서히 글도 씁니다.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그 세상을 사랑하게 된거죠. 그녀의 홀로서기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을 합니다. 가까이서 멀리서 그녀를 염려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크나큰 도움도 있다고 하지요.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박완서의 그 고통을 글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부모 마음에 못을 박는 다는 기분,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이란 게 이런거겠구나란 생각에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리고 더 나아가 아들을 잃은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생명과 존재에 있어서 의미를 다시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존재의 허무함에 대해, 그 허무한 존재안에 불어넣어진 진한 사랑에 대해,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삶의 길에 대해, 절망속에 꿈틀대는 본능적 생명의 움직임에 대해, 신의 존재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이 글은 정말 상상력이 들어간 소설도 아니고, 다듬어진 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런 손길도 거치지 않은 진실된 것이기에 작가의 마음을 더 진솔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랬기에 울면서 이 책을 볼 수가 있던 거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극복을 했다는 안도감에 다시 눈물이 흘렀구요...

 

 

문득... 부끄러워집니다. 가슴에 못 박힌 그리 큰 고통을 극복을 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싶습니다.

저도 당당히 홀로서기를 해야겠지요... ^^ 세상과의 홀로서기. 아니 담판 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