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나 이거 읽었어-독서

고요한 마음의 작은 미동, 떨림. 바로 사랑...

꼬양 2009. 8. 13. 23:42

 

 

 

 

 

떨림 - 뜨거운 가슴을 잃어버린 당신을 위한

스물네 편의 사랑 이야기

 

정호승, 안도현, 도종환, 김용택…각자 한 명씩만으로도 감성 에세이 몇 권쯤은 너끈히 엮어낼 수 있는 우리 시대 대표 ‘가객’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도 이채롭지만, 그들이 모여 사랑에 대해 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온 몸으로 겪고 앓고, 만지고, 또 사무쳤던 사랑에 대해 때로는 너무 솔직하다 싶을 정도로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정호승은 ‘나의 첫 키스’에서 사촌누이와 유리창을 사이에 놓고 나눴던 야릇하고 애틋한 첫키스의 기억을 떠올린다. 함민복은 ‘어느 해 봄 한없이 맑던 시작과 흐린 끝’에서 돼지를 받던 날 헤어진 연인에게서 걸려온 행운 같은 전화의 기억을,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시세계로 소월시문학상에 빛나는 젊은 시인 문태준은 ‘안개가 번져 멀리 감싸듯이’에서 지금의 아내와의 푸른 빗방울 같던 연애담을 잔잔히 들려준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그 여자’에서 고향집 윗마을에 살던 아련한 박꽃 같은 여인에 얽힌 추억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한편 이재무는 ‘두꺼운 책으로 남은 사랑’에서 결혼 후에 찾아온 갓 쪄낸 눈부신 떡살 같은 사랑과 이별을, 시인이자 문화평론가로 활동중인 권태현은 ‘아내를 보면 그녀가 그립다’에서 가난한 시절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며 다가왔던 헌신적인 그녀의 기억을 고백해 시인들의 솔직하고 담백한 면모를 엿보게 한다.

 400여 년 만에 발견된, 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부인이 쓴 편지를 읽고 남일 같지 않은 옛 여인의 지순한 사랑에 감동하여 쓴 도종환의‘아내의 편지’,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랑을 멈춰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중견 시인 문정희의 ‘사랑은 언제나 유치하고 서툴게 시작되었다’, 만인의 연인이었던 ‘백석의 나타샤’를 통해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을 짚어본 안도현의 ‘그리운 나타샤에게’가 이 책의 서정을 더하고 있다.

 그 외 장석주, 고운기, 조윤희, 공광규를 비롯해 평단과 독자에게 사랑 받는 우리시대 대표 가객 24인이 총출동하여 사랑을 재료로 멋진 성찬을 차려냈다.

 

 

나의 첫 키스(정호승)|두꺼운 책으로 남은 사랑(이재무)|어느 해 봄 한없이 맑던 시작과 흐린 끝(함민복)|안개가 번져 멀리 감싸듯이(문태준)|그 여자(김용택)|연애 없는 연애담(고운기)|아내를 보면 그녀가 그립다(권 태 현)

오래전 잃어버린 그립도록 미운 사랑(권대웅)|사랑은 언제나 유치하고 서툴게 시작되었다 (문정희)|아내의 편지(도종환)|두 여인과 꼬마 아가씨(조윤희)|사랑의 시선은 공평하지 않다(조 은)|그 사람은 내 귀 안에 산다(서석화)|맑은 슬픔(공광규)|눈물 제조업의 어머니, 아니 엄마 (유정이)

그리운 나타샤에게(안도현)|카프카를 읽던 시절, 그녀를 앓던 시절(장석주)|사랑은 어떤 것을 이기는가(천양희)|당신 개의 그림자라도 되고 싶어(황인숙)|엘레라이에서 사랑을 말하다(황학주)|지금 막 사랑에 눈뜬 소년을 위하여 (고형렬)|사랑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박형준)|생의 마침표는 사랑으로 찍자(원재훈)|가을 편지(박주택)

 

 

이 책은 시인들 자신의 사랑 이야기 혹은 자신의 생각으로 엮은 스물네 편의 사랑이야기다.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운을 주는, 지난 날 내 마음의 떨림을 기억하게 하는 책이라고 할까나?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은 어느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까?

어느 누구는 사랑이 삶의 전부일 수도 있겠고, 어떤 이에게는 사랑은 별 것도 아닌,

그저 있으면 좋을테고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속에 수록된 시인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들 삶의 대부분이다.

사랑이 없으면 삶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지구, 아니 이 세상에서 사회에서 잘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야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사랑 없이 만나는 사람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란다.

이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 사랑 없는 껍데기만 남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의 일부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20대에 꼭 해야할 일이 있다면 뜨거운 사랑이라고 누가 말했거늘...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지나간 사랑에 아파하고 있는..?

 

모든 회환은 돌이킬 수 없을 때 찾아온다한다.

헤어지는 그 순간도 영화속에처럼, 드라마속에서처럼

아름답고 환하게 헤어지고 싶지만 칙칙하고 무거운 순간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 순간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 헤어진 이후 계속 내 기억속에서 콕콕 찔러댈 뿐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 지위? 전부 다 아니다.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랑’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냐라는 질문에 ‘이 순간에 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맹귀우목(盲龜遇木)이란 말을 아는가?

 바다에 사는 눈 먼 거북이가 우연히 바다에 뜬 나무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만큼 좋은 사람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사랑이 찾아와도 우리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른다.

사랑일까 아닐까 망설이고, 망설이는 순간, 이미 그 사랑은 떠나버리고 없다.

 

 

사랑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사랑이 궁극적으로 유예된 이별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랑에는 이별이 숨어있다.

죽은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듯이 지나간 사랑은 현재의 사랑을 싹트게 하는 씨앗이다.

그리고 현재의 사랑은 이미 몸과 영혼, 삶의 중심을 관통하며 흘러가는 중이다.

시간이 원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먼 이방의 항구로 데려가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고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잊힌 의미로 남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마음이 쨘 했다.

스물네 명 시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다 공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별, 사랑, 그 떨림에 내 마음이 아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랑과 이별을 표현하는 언어는 정말 시적이었다.

과연 시인들 답구나란 생각이...

그리고 도종환 시인의 "아내의 편지"에서는 조두진 작가의 "능소화"를 떠올렸다.

조선 후기 남편을 향한 아내의 절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

 

내 아픈 상처를 다 떠올리게 했던 이 책.

다시 또 읽으라고 하면... 읽지 못할 것 같다.

아주 깊은, 이별 따위 생각치 못할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면

어쩌면 읽을 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