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2009 국가기록원

조선시대 대유행!-남자도 귀걸이하기

꼬양 2009. 5. 17. 10:03

귀걸이는 청동기 시대 청동 귀걸이로부터 비롯해서 금, 은, 플라스틱 소재까지

다양한 소재, 다양한 모양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예전에 귀걸이는 여자들이 하는 장신구의 일부였죠.

현재도 귀걸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자면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것 같은데요.

 

요즘에는 남녀노소 귀걸이를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는데...

 

그런데 그거 아세요?

 

조선시대에는 남자들도 귀걸이를 했다는 사실!

 

여자도 아닌, 남자들이 귀걸이를 했다라...

 

그것도 귀를 안 뚫고 하는 귀찌도 아니고

귀를 뚫고서 진짜로 귀걸이를 했다는 사실!

 

믿지 못하겠다구요?

 

기록에는 다 나와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귀걸이는 남자들에게 대유행이었습니다.

 

기록을 한번 봐 볼까요?

 

 

 

 

 ▲조선왕조실록 선조 6권

 

 

 


 선조 6권, 5년(1572 임신 / 명 융경(隆慶) 6년) 9월 28일(신해) 2번째기사
젊은 사내들이 귀를 뚫고 귀걸이 하는 풍조를 금하도록 하다

 
 

 


↑ 한자를 살펴보면 이렇구요~
 
 

풀이를 하자면~

 

 

비망기(備忘記)로 정원에 전교하였다.

“신체(身體)와 발부(髮膚)는 부모에게 물려 받는 것이니 감히 훼상(毁傷)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초라고 하였다. 우리 나라의 크고 작은 사내 아이들이 귀를 뚫고 귀걸이를 달아 중국 사람에게 조소(嘲笑)를 받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로는 오랑캐의 풍속을 일체 고치도록 중외(中外)에 효유(曉諭)하라. 서울은 이달을 기한으로 하되 혹 꺼리어 따르지 않는 자는 헌부가 엄하게 벌을 주도록 할 것으로 승전(承傳)을 받들라.”

 

 

※ 비망기 :임금의 명령을 적어 승지에게 전하던 문서

 

 
 
 조선시대 우리 젊은 사내들은 패셔니스트였습니다.

귀걸이까지 하고 참 멋지단 생각이 드네요.

근데 선조가 귀걸이를 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말 그대로 오랑캐의 문화를 우리가 따라하지 말자는 건데

기록중에 중국 사람에게 조소를 받는 단 말이 좀 거슬리네요-_-;

 

신체발부 수지부모는 그렇다손쳐도.

비웃음 당하니까 하지 말라는 게 참-_-;

뭐... 조선시대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암튼~ 귀를 왜 뚫지 말라고 했냐면요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조때의 기록에서 나와있는데요,

 
 

선조 93권, 30년(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10월 4일(신유) 6번째기사
접반사 이덕형이 경리 양호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종사관을 시켜 보고하다

 

 

 

 

▲ 조선왕조실록 선조 93권

 

 

이어 소 안찰(蕭按察)의 편지 6∼7장을 내 보이는데 모두 심유경(沈惟敬)을 구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에는 ‘근래에 분분하게 다투면서 모두들 「참급(斬級)은 조선 사람을 죽여 거짓으로 왜적인 양 꾸민 것이다. 」 하는데 공을 살피고 군대를 다스리는 사람이 어떻게 맨손으로 왜적을 죽일 수 있겠으며, 조선 사람은 적을 바라보기만 하고서도 달아나는데 어떻게 벨 수 있겠느냐.’ 하였습니다. 경리가 그 편지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지난날에 왜적의 머리를 조사할 때 밖에서 말하기를 ‘이것은 가짜 왜적이 아닌가.’ 하였다. 이에 신이 대답하기를 ‘가짜 왜적이라면 좌우(左右)의 귀를 살펴보아 귀걸이 구멍을 뚫었던 흔적이 있으면 알 수 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왜적의 머리는 모두 진짜 왜적이니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니, 경리가 말하기를 ‘이것이 모두 다 심유경이 기만하는 말인데 소야(蕭爺)가 다만 심유경을 보호할 줄만 알고 큰일을 무너뜨리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큰일이겠는가.’ 하고, 또 그 속에서 편지를 한 통 내보였는데 이는 바로 소 안찰이 마 총병(麻總兵)에게 게 극심한 원망을 한 것으로서 겉면에 쓰기를 ‘마 총병을 끊는 편지이다…….’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93권에 나온 이덕형과 경리 양호와의 대화입니다.

대화에서 보면 귀걸이를 왜 하지 못하게 했는지를 다시한번 알 수 있죠.

 

 

왜적이라면 진짜로 귀를 뚫었던 흔적이 있기에 이 흔적으로 왜적인지 아닌지 판별했던거죠.

귀 한번 뚫렀다가 막지 않으면 자칫 왜적으로 몰릴 소지가 있는!

 

 

일본인들은 남녀를 불구하고 예전부터 귀를 뚫고 다녔나봅니다.-_-;

 

조선시대 남자들이 귀걸이를 했다는 사실.

흥미로웠습니다.

 

오죽 유행을 했으면 우리 임금님이 하지 말라고까지 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