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2014 산림조합중앙회

죽을때까지 단종을 그리워한 여인의 능. 사릉. 남양주 여행

꼬양 2014. 9. 22. 06:30

 

 

 

[남양주 여행]

단종의 능은 영월에 있죠.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은 영월이 아닌 남양주에 위치해있습니다.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자 정순왕후도 궁궐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봉되고,

그 후 단종을 영영 만나지 못합니다.

 

단종이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정순왕후는

매일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슬퍼했다고 하죠.

죽을 때까지 단종을 그리워하였다하여 능호를 思陵이라 했고,

그녀는 82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한 많은 여인의 사랑이 묻어난 곳, 사릉.

 

 

 

사릉은 작고 단촐합니다.

찾는 이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죠.

홀살문에서 보이는 정자각, 그 옆의 비각,

그 뒤로 보이는 정순왕후릉.

조금더 걸어가면 재실과 관리사무소가 있고

야생화꽃밭과 소나무 숲...

이게 전부인 곳이죠.

 

 

 

조선왕릉 입장료가 대부분 그렇듯...

이곳도 1,000원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사릉은 한동안 비공개 지역이었다가

작년부터 한시적으로 개방이 되었고,

올해 비로소 개방되었습니다.

 

입장료 1,000원이면 휴일인 월요일을 빼고

누구든 자유로이 관람을 할 수 있는데요.

 

 

능 주위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있고,

매표소에서 능까지 가는 길은 그렇게 멀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소나무들이 능 주위를 감싸고 있죠.

 

 

 

홍살문에서 보이는 정자각과 비각, 왕후의 능.

정자각까지는 갈 수 있지만,

능침까지는 갈 수 없습니다.

그저 정자각에서 왕후의 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어요.

 

 

 

 

 

 

정자각에는 친절하게 제수진설도와 기신제 사진이 있더군요. ^^

 

 

정자각에서 바라보는 능침.

소나무들이 능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잘 손질된 잔디들은 마치 부드러운 카페트처럼 느껴지더군요.

 

 

무엇보다도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은

소나무 숲이었어요.

 

사릉은 찾는 이가 없어서 비공개 지역으로 되었다가

작년 한해동안 시범공개를 하고

올해부터 본격 개방이 되었는데요.

 

다른 왕릉보다 확실히 찾는 이들이 적었습니다.

능이 작고 아담하고 조용하기에

저는 이런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지만...

사람들로 가득찬 왕릉을 보는게 익숙했던 분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귓가에 들리는 것은 나무의 서걱거림과 새소리였어요.

 

 

 

 

사릉은 1521년에 정순왕후가 안장되고, 대군부인묘로 조성됩니다.

1698년 단종이 복위되면서 정순왕후로 복위, 사릉으로 높여부르게 되죠.

 

정순왕후는 의지할 자식조차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마을 아낙들은 그녀를 살뜰하게 보살폈다고 합니다.

음식을 날라주며 왕후를 보필하고,

정순왕후를 위해 그녀가 사는 곳 주변에 채소시장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세조가 말년에 정순왕후에게 궁핍을 면할 수 있는 집과 식량을 주었지만,

정순왕후는 그것을 받아줄 여인이 아니었죠.

생활고가 왕후로서의 자존심을, 쓸쓸히 죽은 남편의 억울함과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홀로된 자신의 한을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시녀들이 동냥한 음식으로 살아가는 삶이었지만

정순왕후는 세조의 도움도 뿌리치고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비각안에는 단종왕비 정순왕후 사릉비문이 있었죠.

 

 

정자각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야생화 전시포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00여종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는데요,

야생화 전시회는 매년 5월에 개최한다고 하는군요.

생전에 정순왕후도 꽃을 좋아했을까요...

 

 

 

 

사릉에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 수종 육성을 위해 전통수목 양묘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우량한 종자와 묘목을 생산해

궁, 능, 원에 분양하고 있다고 해요.

 

궁, 능, 원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이곳에서 자란 것들이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사릉의 끝자락에는 재실이 위치해있었네요.

 

왕릉은 원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지만,

이처럼 발길이 뜸한 왕릉은 또한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과 전통수목 양묘장은 참으로 독특했습니다.

부드러운 능선에 위치한 왕후의 능도 인상적이었어요.

 

조선왕조 역사에서 한 많고 눈물많은 왕비를 꼽으라면

아마 이 정순왕후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습니다.

 

작고 아담한 왕후의 능은

그리움과 한이 굽이굽이 서린 것만 같아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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