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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힐링여행. 1년에 단 보름만 열리는 길, 용암이 남긴 흔적을 따라 걷다, 2013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대회

꼬양 2013. 7. 27. 06:00

 

 

[제주여행]

1년 중 단 보름만 걸을 수 있는,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길, 거문오름의 용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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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은 만장굴, 김녕사굴, 용천굴, 당처물동굴, 벵뒤굴 등을 포함하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로

용암이 남긴 ‘시크릿 가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화산으로부터 이렇게 긴 동굴이 거리를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그 예가 매우 드물며,

오름 내부에 다양한 동식물이 자생해 생태적 보전 가치 또한 매우 뛰어기에,

이곳은 2007년에 국내 최초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됩니다.

 

 

▲ 용암길은 좀 험합니다, 때문에 트레킹화 또는 등산화가 필수~

 

 

 

 

 

 

 

 

 ‘2013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국제 트레킹’이 지난 7일부터 21일까지 보름간 열렸습니다.

 2008년 첫 행사를 시작으로 올해 6회째를 맞고 있는데요,

평상시 거문오름 탐방은 사전 예약을 한 400명의 인원만 입장이 가능했지만,

국제트레킹 대회 기간에는 별도의 예약 없이 무료로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출입증을 받아 탐방할 수 있었습니다.

 

 

 

 

탐방로에는 여러 코스가 나와있지만,

제가 걸을 용암길은 이 코스표에 없습니다.

1년에 단 보름만 개방되기 때문이죠.

 

 

 

트레킹 코스는 ‘태극길(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정상~분화구~능선, 10km)’과

‘용암길(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정상~벵뒤굴~경덕원, 5km)’의 2개 코스로 이뤄지는데요.

태극길은 말발굽 모양의 거문오름 분화구와 거문오름 정상부의 아홉 개 봉우리를 순환하는 탐방로인데,

분화구 능선과 분화구 내의 알오름을 돌며 탐방하는 모양이 ‘태극’ 문양을 형상합니다.

 

그리고 트레킹 기간 중에만 한시적으로 개방되는 용암길은

거문오름에서 용암이 흘러간 길을 따라 상록수림, 곶자왈지대 산딸기 군락지,

벵뒤굴 입구, 알밤(알바메기)오름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약 3시간 가량이 소요됩니다.

 

낮기온 33도, 찌는듯한 더위가 찾아왔지만,

숲이 있어서 그렇게 덥지는 않았습니다.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거문오름 들머리에 있는 삼나무 숲을 걷고 있습니다~

삼나무는 제주어로 숙대낭이라고 하지요..^^

일본이 주산지인데 길쭉길쭉 하게 자라, 바람을 막기에는 딱 좋지만

이 삼나무의 꽃가루는 알러지유발자라고 하더군요.

제주도의 아토피 환자들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말을 해설사님께 듣습니다.

 

 

 

 

 

 

지금은 거문오름 정상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낮은 계단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나무데크 계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 계단~

이 계단의 끝에는!

멋진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계단을 오를 땐 어찌나 힘이 들던지! ㅠㅠㅠㅠㅠㅠ

 

 

▲나무와 풀로 가려진 일본군 갱도 진지

 

거문오름 일대는 고난과 비극의 제주근대사를 상징하는 핵심 공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넓고 깊숙한 거문오름은 이 일대 사람들이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던 생활터전이었지만

일본은 여기에 군사시설을 만들고 오름 전체를 요새화합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거문오름 일대는 일본군 6천여 병력으로 구성된 108여단 사령부가 주둔했다고 해요.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숨이 차 헉헉 거리면서 마주한 풍경입니다.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이네요.

거문오름에서 한라산을 보기가 참 힘들다고 하는데,

왠일인지 오늘은 한라산이 말끔하게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

 

오름트레킹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이곳이 정상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 나무데크길을 따라 걷습니다.

 

 

 

 

이곳이 정상이랍니다.

깃발이 휘날리고 있네요~

파란 하늘이 참 예쁘죠 ^^

 

 

 

정상 456m 표시 ^^

 

 

그리고 정상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풍경...

 

 

 

풍경이 멋지다고 그저 좋아할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문오름 정상부에 서면 해안에서부터 오름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조천 서우봉과 성산일출봉도 보이고, 그리고 분화구 내부는 깊숙하니 들어가있으면 누구도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거문오름은 연합군에게 노출되지 않는 입지를 지닌 ‘천혜의 요새’였던 거죠.

더구나 일본군이 만든 갱도진지는 정상부를 비롯해 능선과 분화구 안까지 모두 10여 곳에 이릅니다.

일제강점기와 이어진 4.3사건의 슬픔과 아픔이 고스란히 이 거문오름에 녹아있구요.

4.3사건 당시에는 이 오름이 사람들의 도피처가 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임을 당하기도 한 서글픈 역사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태곳적 신비를 지니기도 했지만,

아픔과 상처도 지닌...

거문오름이었습니다.

 

 

 

 

 

 

 

 

 

 

 

 

거문오름의 분화구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다양한 식생이 자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

 

 

 

 

 

 

 

 

 

슬픈 역사와 아픔을 안고 있지만,

경치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거문오름 분화구도 멋지지만, 용암길에 대한 기대가 더 컸습니다.

거문오름 트레킹 코스는 걷기 편하도록 나무데크와 계단이 만들어졌지만,

용암길은 자연 그대로의 길, 

돌과 나무 뿌리, 낙엽, 흙을 밟으면서 걷는 길이기 때문이죠.

 

 

 

 

 

 

거문오름에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입니다.

 

 

 

정상에서 내려와 평지를 걷자, 경고문이 겁을 주네요.

근데 이 길이 용암길의 시작입니다.

작년만하더라도 트레킹 기간을 거의 한 달로 잡았지만,

올해부터는 보름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자연이 더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죠.

용암길의 시작은 경고문으로부터~

 

그러나 올해는 더이상 이 길을 걷지 못합니다.

내년 국제트레킹대회를 기약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결코, 절대. 용암길 걷게 해달라고 자연유산센터에 가서 떼쓰거나 화내거나 그러지 마시구요.

(사실 용암길 취재를 하겠다고 하니, 관계자분들께서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 글을 보고 용암길 열어달라고 민원들어오는게 걱정이라고 말입니다.

거문오름의 용암길은 내년 트레킹 대회에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두시길 바랍니다.

어느 누가 오더라도 올해 이 길은 못 걷습니다 ^^)

 

 

 

용암길의 자연은 정말 훼손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뱀의 모습이 렌즈에 잡혔습니다.

독이 없는 뱀이라고 같이 동행했던 해설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긴 했지만,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

 

 

 

 

 

 

 

 

 

 

 용암이 흘러간 자리, 그곳엔 초록이끼와 고사리가 자라고 있다...

 

약 30만 년 전에서 10만년 전 사이,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엄청난 양의 용암류는

해안까지 경사를 따라 북동쪽으로 구불구불 흘러가면서 ‘선흘곶’이라는 곶자왈 지형을 만들었습니다.

이어 유출로를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튼 용암은 벵뒤굴을 만들었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을 만들며 바다까지 흘러갑니다.

 

용암이 흘러갔던 길을 그렇게 제가 걷고 있는 것이지요.. ^^

 

 

 

 

 

 

▲곶자왈

 

용암의 유출통로는 실제 땅의 높이가 주변보다 낮지만 수목이 우거져 있어 높은 곳에서 보면 마치 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용암은 곶자왈 지형을 형성했는데, 제주어로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자갈이나 바위 같은 돌멩이를 말하는데, 곶자왈이란 ‘돌이 많은 숲’을 의미합니다.

 

원시의 숲과 암괴, 축축한 공기는 아열대, 난대, 온대에 걸쳐 출현하는 식물들이 공존하는 식생과

독자적인 생태계가 유지되는 독특한 지역을 형성하게 했는데요.

곶자왈은 수만년 전 과거로 돌아가 마치 태곳적 신비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 숯가마터

 

용암길에서 만난 숯가마터.

제주도민의 중요한 생활유적 중 하나인 숯가마터입니다.

산에서 숯을 구우면서 살았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거문오름에는 이렇게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자연과 하나된 숯가마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오더라구요.

 

 

▲ 곶자왈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판상근

 

팽나무 뿌리가 마치 공룡발처럼 드러나 있습니다.

곶자왈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지요.

용암길은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길을 걷는데 어디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옵니다.

낮기온은 분명 33도인데,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길래 잠시 걸음을 멈췄는데요.

 

다량의 낙반이나 암석들이 성글게 쌓여있는 틈 사이에서 바람이 나오는 것을 ‘풍혈’이라 하는데

여름철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철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고 해요.

한가지 더, 제주 사람들은 이 풍혈을 ‘용의 입김’이 나오는 곳이라 부른다는 사실.

 

용의 입김은 참으로 시원했습니다 ^^ 

 

 

△ 일색고사리

 

 

△탐라산수국

 

 

▲ 가운데 식물이 가시딸기

 

△ 섬잔대

 

봄꽃이 거의 끝나갈 즈음부터 만개하는 탐라산수국과 제주도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희귀식물인 ‘가시딸기’,

가을철 한라산에서만 자란다는 제주도 특산식물 ‘섬잔대’, 울릉도와 제주에서 발견되는 ‘일색고사리’까지,

용암길에서는 희귀하고 진귀한 식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용암길은 상당히 투박합니다. 나무 데크도 없고, 그저 하얀 줄 하나로 진행방향을 표시합니다 ^^

 

 

 

 

곶자왈을 벗어나서 용암이 흘렀던 흔적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웃밤오름 용암대지에 있는 벵뒤굴을 향해 걷는데,

그늘없이 걷는 건 참 힘들어요.. ^^

 

 

 

△ 벵뒤굴

 

 

벵뒤굴 앞에는 옹기종이 나무의자가 모여있지요.

이 의자가 있는 이유는?

벵뒤굴에서도 풍혈처럼 시원한 바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

용암길을 걷다가 흘린 땀을 벵뒤굴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식혀가라는 의미에서 입니다.

 

 

▲ 벵뒤굴

 

벵뒤굴은 제주도의 용암동굴 중에서 가장 복잡한 내부구조를 갖고 있는 미로형 동굴입니다.

다만, 비공개 동굴이라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살짝 아쉽긴 했지만 벵뒤굴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더라구요..^^

 

찌는 듯한 더위, 뜨거운 태양과 함께 걸었던 3시간.

어느덧 5km 용암길의 종착지 ‘경덕원’에 도착합니다.

용암동굴계를 형성한 어머니와 같은 산, 유네스코 자연유산 조사단이 극찬한 오름이 바로 이 거문오름이라는 사실.

 

30만 년 전 용암 동굴의 신비로움과 숨결, 뛰어난 풍광, 제주인들의 애환과 슬픈 역사까지 느낄 수 있었던 거문오름 트레킹은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줬습니다.


지질, 지형, 식생의 측면에서 매우 다양한 요소를 갖는 지역으로 지질학적,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곳.

우리가 꼭 지켜내야 할, 세계인들이 함께 지켜내야 할 자연유산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제 이 용암길도 내년을 기약해야 합니다.

1년에 단 보름만 걸을 수 있는 특별한 길, 이곳은 제주의 보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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