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래로 가장 짧은 시간동안에 가장많은 사람을 죽인 사건.
우순경 사건을 아시는지요?
세계 100대 살인사건에 들어가는 것 중에는....
▲루이스 가라비토(콜롬비아)= 91년부터 5년간 189명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2000년 5월 835년형을 받고 보고타 감옥에 수감됐다.
▲페드로 로페스 몬살베(에콰도르)= '안데스의 괴물'이란 별명을 지니고 있으며 지난 80년 57명의 어린이를 성폭행ㆍ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실제로는 300명 이상을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받았다.
▲자베드 이크발(파키스탄)=100명의 어린이를 토막 살해한 혐의로 2000년 3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델피나, 마리아 데 헤수스 곤살레스 자매(멕시코)= 자매가 함께 윤락업소를 운영하며 80명의 여성과 11명의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64년 40년형 선고받았다.
▲아나톨리 오노프리옌코(우크라이나)=어린이 10명을 포함 52명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99년 사형선고를 받았다. 불과 5개월사이 43명을 살해해 충격을 줬다.
▲안드레이 치카틸로(구소련)=지난 78~90년 성욕 충족을 위해 52명의 목숨을 앗은 교사출신 연쇄살인범. '로스토프의 백정'으로 불렸으며 지난 94년 2월 사형됐다.
▲존 웨인 게이시(미국)= 아마추어 광대출신의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광대 살인광'으로 불렸다. 33명의 젊은이들을 성폭행, 고문하고 목졸라 죽였으며 사체를 자신의 집에 파묻는 대담함을 보였다. 지난 94년 3월 사형됐다.
▲마르셀 프티오(프랑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프랑스 점령기간동안 24명을 살해해 1946년 사형됐다.
▲데니스 닐센(영국)= 78~83년 런던 북부 자신의 집에서 15명의 젊은이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 선고. 사체를 삶아 변기에 버리는 방식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했으나 인근 하수구가 막히는 바람에 엽기 살인행각이 들통났다.
▲피터 수트클리프(영국)='요크셔의 살인마'라는 별칭을 지녔으며 지난 75~80년 창녀 등 13명의 젊은 여성을 살해해 전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다른 미제(未濟)살인사건들의 혐의도 받고 있다. 지난 81년 종신형이 선고됐다.
▲로즈메리 웨스트(영국)= 영국 글로스터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친딸을 포함해 10명을 죽인 혐의로 95년 종신형을 받았다. 남편인 프레드릭 웨스트와 함께 9명을 더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남편은 재판을 앞두고 감옥에서 자살했으며 자살 전 12명을 더 살인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있습니다.
일단. 불명예스러운(?) 우순경 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 신문 기사.
△ 단체 장례사진.
범인 우범곤은 생활고로 결혼을 하지 않은 채 25세의 전씨과 동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2개월 이상 동거를 하였지만 결혼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자책하며 열등감을 가져오던 차였는데요.
사고당일 전씨와 말다툼을 하였고, 주민들이 자신을 욕한다는 말에 격분하여 음주를 하고
술에 취한 채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하며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했습니다.
시골지서로 좌천된데 대한 인사 불만이라는 설도 있어요.
희생된 자만 해도 수십명입니다.-_-;
사건은 1982년 4월 26일 오후 9시 30분경에 일어났습니다.
1982년 4월 26일 저녁 7시 반경, 경남 의령군 궁유면 의령경찰서 궁유지서 소속 우범곤 순경이 궁유지서 무기고에서
카빈총 두 자루와 실탄 144발을,
또 부근 예비군 무기고에서 수류탄 8발을 각각 탈취했습니다.
그는 탈취한 무기를 들고 궁유면 토곡리 시장통과 궁유우체국 및 인근 4개 마을의 민가로 뛰어다니며
무차별 난사, 주민과 우체국 교환수, 집배원 등을 살해했죠.
그가 왜 우체국으로 갔을까요?
외부와 통신을 두절시키기 위해서였겠죠?
그리고 전기불이 켜진 집을 골라 다니며 젖먹이, 노인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먼저 그는 지서 앞 시장에서 수류탄 1발을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근처 궁유우체국에 들어가 근무 중인 교환수 등을 향해 카빈총을 난사하여 세 사람을 숨지게 했습니다.
밖으로 나온 우범곤은 수류탄 폭음소리에 놀라 집 밖으로 달려 나온 주민들을 향해 다시 카빈총을 난사했구요.
그 자리에서 34명이나 되는 주민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끔찍...!
그 뒤 그는 마을 뒷산으로 달아났다가 저녁 9시 30분 경 그가 살던 압곡리 마을에 나타났구요.
우범곤은 이 마을의 전씨(56세)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전모씨는 벌써 잠자리에 들어 있었고,
옆방에는 우범곤의 동거녀인 전씨와
그녀의 어머니 최씨 등 마을주민 5명이 놀러와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는데.
우범곤은 “다 죽여 버린다"며 카빈총을 그대로 난사,
현장에서 4명이 즉사했고 한명은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인기척 소리가 그치자 우범곤은 뒤이어
마당에 수류탄 1발을 까서 던져 놓고는 인근 평촌리 마을로 내달렸죠.
우씨의 범행을 모르던 평촌리 마을 주민 박모씨가 술상을 차리고
우범곤은 “쥐꼬리만 한 봉급에 총각 신세라 순사 짓 못해 먹겠다."며 신세 타령을 했고,
옆에 있던 한모씨가 핀잔을 주자 총을 쏘아 그 둘을 숨지게 했습니다.
우범곤은 다시 이웃 평촌리 서 모씨 집에 들이닥쳐서
일가족에 총기를 난사, 그의 부인과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27일 새벽 5시 30분 수류탄으로 자폭했구요.
이 사건의 여파는?
이 사건이 상부에 보고도 늦고 출동도 늦은데다 진압마저 미온적이어서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며
00경찰서장 최00 경정을 구속하는 한편, 관계자 수 명을 직위 해제시켰습니다.
아울러 치안총수인 내무장관이 인책 사임했구요.
국회에서는?
내무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치안문제가 아니라, 보고 체계와 무기 관리 등 당국의 치안 정책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내각 총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는데...
내각 총사퇴까진 않았구요~
이 시점을 배경으로 「경찰공무원법」이 대대적으로 수정되어 「국가공무원법」의 특례를 규정하는 단일법으로 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83년 4월 경찰공무원 임용령을 개정하여 경찰채용시험에 고졸이상이라는 학력제한 규정을 두었으며,
종합적성검사를 추가하여 인성검사 및 정밀신원조사를 통한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규정을 추가했죠.
또한 경과를 일반특기와 전문특기로 분류하여 전문특기자에게 계급정년 연장 등 혜택을 부여했습니다.
그 외에도 승진제도를 개선하였고, 신임순경 교육을 8주에서 24주로 연장했구요.
아무튼...
80년대 이 일대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국민들을 경악케 했던 우순경 사건.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조용한 어느 시골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단체 장례식까지 치르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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