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경상도

욕심없이 주경야독하는 전형적인 시골선비 주택-충효당

꼬양 2009. 12. 15. 19:34

충효당. 이 집에서 충신과 효자를 배출해 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정려(정충각과 정효각) 받아 충효당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지요.

예안 이씨가 처음 풍산에 내려온 시기는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인해 안동파 시조인 필간공의 자제분 3형제가 풍산으로 처음 남하했던 때라고 합니다.

예안 이씨 충효당이 위치한 터를 살펴보면요, 

기름진 풍산 평야, 풍산읍, 상리천의 넓은 전망이 한 눈에 펼쳐지는 나지막한 야산과 바위를 뒤로 하고 있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연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배산임수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느라고 건물 좌향이 서향을 하고 있는 드문 예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상류주택으로써 남녀의 공간 구분이 분명한 것도 이 집의 특징 중의 하나죠.

건물 서북쪽으로는 연못이 있고 겨울철 바람을 막기 위한 나무를 심었습니다.

연못 사진은 생략하겠습니다.ㅎㅎㅎ(사실, 너무나도 사진이 엉망이라...;;ㅎㅎ)

 

 

 

 

충효당으로 들어가볼까요?

이곳은 정말 우연하게 가게 된 곳이죠^^ 고택을 연구하시는 분 덕분에 가게 된 곳인데..ㅎ 그분께 너무나도 감사드릴 뿐입니다.ㅎ

이런 좋은 고택을 보게해주셔서...ㅎㅎ  들어가면 바로 별당이 보입니다.

 

 

 

 

예안 이씨 충효당은 본채와 별당인 쌍수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사진은 쌍수당입니다.

 


별당인 쌍수당은 막돌로 기단을 쌓고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습니다.

돌계단을 통해 누상부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고 온돌방과 누마루가 있는 정자형식이죠.

주택 내에서는 사랑채의 연장 공간으로 집 주인이 손님 접객, 독서, 민여 등의 다목적 용도로 쓰던 건물이라고 하는군요.
쌍수당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이윤... 

대부분의 상류주택과는 달리 장식도 거의 없어 소박하고 서민적인 분위기가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대강대강 다듬어서 원래의 자연스런 모습을 그대로 살렸더군요.
그리고  누마루에서는 북쪽, 동쪽, 서쪽의 문을 열면 바깥과 그대로 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누 상부는 누 하부의 기둥 위에 다른 둥근 기둥을 올려놓고 마루부분은 판벽으로, 방은 흙벽으로 마감을 했다는데,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어서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었답니다^^;
 진입계단 부분과 방 뒤 바깥 면을 제외하고 각 방향에 계자난간을 빙 둘러 설치했구요. 사진을 보면 아실거예요~ㅎㅎ

 지붕 형태는 팔작지붕이고...

기와는 한식 기와 중와를 3겹으로 이었는데 용마루 및 추녀마루의 끝은 망와로 마무리했다는데.. 아. 기와는 어렵네요^^;;

 

 

 

중문을 통해 본채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본채는 경상도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ㅁ자 형의 평면구조입니다.

중문에서 본 안채의 모습인데요.  소박한 기둥머리, 간략한 처마 등 비교적 원형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바깥채보다 60cm가량 높아 두드러져 보이고 세개의 두리기둥이 당당한 모습입니다.

 

 지붕은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며 맞배지붕, 맞배지붕이라함은 건물의 측면에서도 지붕의 용마루까지 올라가게 되어 측면에 삼각형의 벽이 생기는 지붕입니다. 이 지붕이 서로 가적지붕(본채의 큰 지붕 옆쪽에 붙어있는 작은 지붕. 눈썹지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본채 역시 대부분의 상류주택과는 달리 소박한 민가 성격이 두드러지고, 다른 종택에 비해 밖으로 통하는 문과 창호가 많은 것이 특징이죠.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 요즘들어 곶감이 눈에 밟힙니다. 어딜가나 다 곶감입니다!! ㅠ_ㅠ

 

 

문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네 귀 맞춤을 해서 짠 문틀과 세살문 한 쌍. 그 세살문 한가운데 기둥(문설주)을 세운 특이한 예죠. 이 집만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 기둥! 기둥에 각이 보이시나요? 팔각기둥입니다~

그것도 다름아닌 부엌에!!! 팔각기둥이 있답니다.ㅎㅎ

안채 대청과 안방의 정면 4칸에는 둥근 기둥 3개가 있는데, 위에 사진 중에 있습니다. 기둥 3개 나온 사진!

배흘림(기둥의 중간이 가장 굵고 아래 위로 가면서 가늘게 된 기둥)을 약간 주었고요.

그리고 중문간에 둥근 샛기둥이 하나 있고 나머지는 모두 민흘림(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굵어지는 것) 네모기둥입니다.

 

역시. 전문용어는 어렵군요-_-;

 

 

 

 

 

 본채를 찍은 사진입니다. 저 문(중문)을 통해 들어가면 바로 안채가 나오는거죠^^

 

 

 

충효당의 마당은 이렇게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관리하는 분이 상주하기에 이렇게 깔끔하게 정돈이 되었나 싶습니다.

곳곳에 비치된 소화기. 그리고 말끔한 마당. 관리가 너무 잘되고 있어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선시대 주택양식을 엿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그리고 이 상태라면 우리 후손들에게도 이 모습 그대로를 물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스름 저녁. 충효당을 둘러보고 나옵니다.

 

충과 효가 깃들어 충효당이라 이름을 붙였다지만. 사대부의 소박한 멋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였습니다.

 

조금도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리만큼 소박한 곳.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격식은 다 갖추면서도 곳곳에 몸 낮춘 흔적이 역력하다고나 할까요.
솟을 대문이 있다거나 우람한 건물도 아닌, 양반집들은 기단이 높아 위압감을 주지만 이 집은 그다지 높지않아 편안한 느낌이었던,

욕심 없이 주경야독하는 전형적인 시골 선비의 주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