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경상도

詩가 있는 통영의 거리를 걷다 -김상옥, 유치환 거리

꼬양 2010. 8. 10. 07:30

여행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천천히 걸으며 그 곳의 정취를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각 지방에서는 걷기 여행 코스가 많이 생겨나고 있죠.

비록 짜여진 여행코스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의 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그곳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지역 주민에게 있어서는 일상의 거리겠지만, 그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어느 특정한 거리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게 되죠. 

 

걸어서 통영 시내 이곳저곳을 걸어보게 되었죠. 지도 한장 갖고 걸어다닌 통영은 의외로 넓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인물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항남 1번가 초정 김상옥 거리의 시작은 이렇게 김상옥의 사진이 새겨진 동판과 시조 한수로 시작이 됩니다.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김상옥 ‘봉선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초정 김상옥은 일제시대 보통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지만 시, 서, 화에 모두 뛰어나 문단에서 '시서화 삼절'로 불렸다고 하죠. 교과서에 실린 시조 '봉선화', '백자부', '옥저' 등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림, 서예, 전각, 도자기, 공예까지 두루 재능을 가져 수많은 육필원고와 유품을 남겼습니다.

특히나 일제강점기 이후 국내 시단의 대표적인 시조 시인으로 꼽히는데요, 김상옥은 시조집 ‘초적’, ‘목석의 노래’, ‘묵을 갈면서’ 등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에 관한 깊은 탐구 정신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수차례 투옥된 항일운동가로도 잘 알려져있죠.

 

 

이 거리가 김상옥 거리로 조성된지는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2007년경에 본격적으로 이 거리를 김상옥 거리로 지정하고 지금까지 관리를 해왔습니다. 이때 이렇게 이 거리가 조성이 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가는 거리로, 평범한 일상 속의 장소로 기억하고 있겠죠.

 

 

 

 

 

초정 김상옥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갑니다. 그 중에 저도 끼어있습니다.

이곳을 처음 찾는 저에게는 새로움으로, 통영 시민들에게는 일상속의 장소로,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곳이죠.

 

 

초정 김상옥거리, 즉 항남 1번가 길은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 해방 이후에도 통영 최고 번화가라고 하죠. 이를테면 통영의 명동이라 불렀던 곳입니다. 이곳은 당초 오행당골목이라 불리어져 오다가 도심상권 회복을 위한 자구책으로 2004년 경 항남1번가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명성레코드, 영수당, 오행당, 희락장, 충무도서 등 통영을 오래 지켜온 전통있는 상점들이 아직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거리를 거닐다보면 이렇게 동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동판은 나침반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해줍니다..

 

 

 

거리 곳곳에는 김상옥의 시, 서, 화를 볼 수 있습니다. 원래 땅을 보고 걷는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이곳에서는 줄곧 땅만 보고 걸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작품을 거리를 걸으면서 잠시라도 살펴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참, 항남 1번가 혹은 초정거리는 통영 근대문학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부인 권재순 여사와 초정 김상옥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며, 최초의 시조동인지 '참새'가 발간된 곳도 바로 항남 1번가 길이기때문이죠.

그리고 이 '초정길', 항남1번가를 걸어가다보면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艸丁 金相沃, 1920~2004) 살았던 곳"이라 새겨져 있는 생가 표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 김상옥을 생각하며 걸었던 항남 1번가 거리를 지나 이제 유치환 거리를 향해 봅니다.

 

 

통영의 중앙동 우체국 앞으로는 청마 유치환 거리가 이어집니다. 중앙동 우체국은 유치환이 찾아와 사랑하던 여인 이영도(시조시인·당시 미망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또 썼던 곳이라고 하죠. 1947년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만난 뒤 그는 196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뜰 때까지 쉬지 않고 이영도에게 편지를 써서 붙였습니다. 20년간 5천통이 넘는 편지를 받은 이영도는 그것을 고스란히 보관해 뒀습니다. 그리고 이영도는 67년 청마 사후 200통의 편지를 추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서한집을 냈다고 하죠.

 

 

유치환 거리를 걷다보면 어느 동네길과 같이 작은 골목길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네 옛날 시골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정겨움이 묻어나는 작은 골목길.

 

 

저 멀리 빨간색 우체국 표시가 보입니다. 바로 저곳이 중앙동우체국이죠.

이 중앙동 앞 우체통 옆에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그의 시 "행복"을 적은 시비가 세워져있습니다.

 

 

 

제가 찾아간 날은 공교롭게도 일요일이라서 우체국은 문을 닫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우체국은 휴일이라 한산합니다.

 

 

이게 바로 청마 유치환의 "행복" 시비 입니다.

유치환과 통영중앙우체국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죠.

유치환이 생전에 여류시인 이영도를 비롯해서 지인들에게 무려 5천여통이 넘는 편지를 보낸 곳이 바로 통영의 중앙동 우체국이니까요.

그리고 이 "행복"이란 시에도 우체국이 등장합니다. 눈에 힘을 주고 한번 우체국을 찾아보세요!

우체국은 과연 몇 연 몇 행에 있을까요?

 

 

 

 

빨간 우체통은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아 더더욱 빨간색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치환이 수천통의 편지를 각지로 보냈던 역할을 수행한 우체국은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에 있네요.

비록 유치환은 저 세상으로 갔지만 말입니다.

 

 

 

유치환 거리 거의 끝까지 온 것 같습니다. 표지석 하나가 눈에 띕니다.

"역사, 문화 기행코스"

그렇죠, 이곳은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통영이 낳은 예술가의 혼들이 가득한 거리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청마의 시, 향수 시비까지 자리하고 있죠. 청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청마문학관을 찾아가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청마 유치환의 삶, 문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잠시 쉬었다가라고 이렇게 쉼터까지 마련해 둔 센스까지 돋보이는 유치환거리.

 

통영의 곳곳은 시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아니 예술가의 혼으로 가득하다고 해야할까요?

초정 김상옥 거리로 시작해서 유치환 거리까지, 시로 가득한 길을 걷노라니 마음은 참 차분해졌습니다.

 

 

 

청마거리 찾아가는 법

대중교통편
시외버스터미널 → 토성고개 → 데파트(하차)
승용차편
시외버스터미널 → 북신사거리 → 정량동 → 중앙시장(유료주차장)

 

김상옥 거리(항남1번가)

경남 통영시 항남동

항남1번가 일대 명성레코드~보경유리상회까지 18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