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경상도

달 그림자 비추는 그 곳. 그리고 450여년전의 사랑의 그 곳 - 월영교

꼬양 2009. 12. 1. 20:01

달 그림자 은은하게 비추는 그 곳. 그리고 450여년전의 사랑의 그 곳 - 월영교

 

 

세상은 더 이상 울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고, 이렇게 왔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사위는 고요했습니다.
너무 고요해서 제가 꿈속에서 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이 떠난 줄 알지만 저는 자주 놀랍니다.
낮은 발소리에도 놀라고 낙엽 뒹구는 소리에도 놀랍니다.
나뭇잎이 공연히 떨어지고 발소리가 저 혼자 날 리 있겠습니까.
저는 잎 지는 소리에 당신이 왔음을 압니다.
초겨울 빈 가지에 걸린 달빛이 홀로 외롭습니다

 

 

조두진의 능소화 中...

 

 

고요를 찾아가는 시간, 밤.

그리고 고요를 찾아가는 계절, 겨울.

 

어느덧, 12월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을은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겨울은 왔다는 기척도 없이 옆에 살포시 자리잡고 있네요.

가을의 달과 겨울의 달.

어느 달의 가장 쓸쓸할까요?

어떤 다리를 건너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습니다.


 

 

 

달 월. 그림자 영. 달 그림자 비추는 그 곳.

이름처럼... 낭만적인 곳이죠.

450년전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1998년 4월... 안동 고성 이씨 이응태의 무덤에서 미투리 한 켤레와 그리고 편지 한 장이 나옵니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아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여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황망함속에서 원이 엄마는 머리를 잘라 미투리를 엮었겠죠. 그리고 눈물을 지으며 남편의 관에 미투리와 함께 편지 한장을 넣습니다.

그 편지와 미투리는 450년이 지나서 발견이 되지요. 이제 우리는 그녀를 원이엄마라고 부릅니다.

 

 

 

450년전의 낙동강도 이렇게 흐르고 있었겠죠? 그리고 이렇게 파란 하늘이었을까요?

 

 

월영교를 걸어봅니다. 달빛 은은할 때 연인끼리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하지요.

 

 

 

낙동강의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

저승과 이승을 잇는 다리가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랑에 필요했겠죠.

 

 

 

다리 가운데에는 월영루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잠시 앉아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이죠.

정자 사진은 제가 제대로 찍지 못해서... 현판만... 넣었습니다. (진지한 분위기였는데... 참... 죄송죄송....;;)

 

 

정자에서 바라본 월영교의 모습입니다. 이 월영교는 미투리 모양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미투리가 뭔지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으로 압니다.

 

 △고성이씨 이응태 무덤에서 발견된 미투리.

 

미투리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미투리가 의미가 있는 까닭은 그것이죠.

원래 삼이나 모시로 만듭니다. 하지만 사랑의 정표, 그리움의 정표로 아낙들은 머리카락을 잘라서 미투리를 엮었죠.

저승가는 길에 같이 가지 못하고, 미투리나마 신겨 보내는 애절한 마음으로...

아내는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랐을 것입니다.

남편 옆에 묻히고 싶은 마음을 가무리며, 남편 발에 꼭 맞을 미투리를 한 올 한 올 짰을 것입니다.

그것을 남편의 시신 곁에 놓아두고 물러나는 여인은 얼마나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까요.

 

 

 

이제는 그들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월영교가 세워졌습니다.

이른바 한국판 사랑과 영혼이라 불리는 그들의 사랑.

수백년이 지나도 그 사랑은 우리네 마음을 울리는군요.

 

 

수백년의 세월을 그대로 머금은 듯 낙동강은 아무말 없이 유유히 흐르고...

 

 

 

연인들의 저녁 데이트 코스 1번지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사랑을 이루고 싶다면 꼭 걸어야 할 다리 같단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오후 12시, 1,3,5,7,9시에는 분수가 가동됩니다.

월영교는 달이 뜨는 밤에 봐야 정말 그 멋이 그대로 묻어나는 곳 같습니다.

아쉽지만 분수는 11월 중순까지만 운영됩니다.

 

 

달 그림자 비추는 그 곳. 수백년의  애틋한 사랑을 머금은 곳.

월영교.

월영교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사람은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함께 있어도 그리워했는데 당신이 가시고 없으니 그리움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강물은 굽이굽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하지만 끝내 다시 만나는 법이라고 하셨지요.
걸음을 재촉한 강물도, 더디 흐른 강물도 바다에서 만나기는 매한가지라고
당신은 힘겨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
저는 당신이 힘겹게 이어가신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떠나셨고 저는 남았지만 우리는 바다에서 만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