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전라도

너무 넓어서 대략난감, 세계문화유산 화순고인돌유적지

꼬양 2012. 1. 20. 06:30

[화순여행]

아무리 걷는 걸 좋아하고,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던 곳이 있었다.

다름아닌 세계문화유산인 화순 고인돌 유적지.

이 어메이징한 곳은 5km 주변 일대에 596기의 고인돌들이 버티고 있었고,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화순군에는 160여개군에 1,30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다.

 

사실... 지금 다시 가라고하면...

난 차를 끌고 갈 생각이다.

도보로는 도저히 커버가 안되는?

도보가 되긴 하지만... 여기 한바퀴 돌고나면 화순군 다른 곳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는...

완급이 필요한, 그리고 고인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고

공부하며 걸어야 하는 곳이다.

 

돌과 함께 하는 과거로의 여행, 화순고인돌유적지.

 

 

▲ 파릇파릇 했으면 더 예뻤을지도? 여긴 고인돌유적지

 

효산리에 위치한 화순고인돌 유적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순고인돌공원에는 59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들어는 보았는가... 100톤의 고인돌? 어쨌든 그 이상 고인돌 수십기와 280톤 규모의 고인돌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고 선사인의 다양한 삶을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체험장이 운영되고 있기에 더더욱 유익한 곳이기도 하다.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어른들은 물론 초·중·고 학생들에게 유익한 체험학습장이 되는 곳이다.

 

제주도에서 많은 고인돌을 봐 왔고, 초등학교 소풍장소가 고인돌이 있던 장소였기도 했었다. 고인돌은 많이 익숙했다. 더구나 이 화순고인돌 유적지를 방문하기 전, 내 머리속에 떠오른 곳은 가파도의 "고인돌 추정지"였다. 밭 가운데에 넘버링이 되어 있던 고인돌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가파도의 고인돌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어린이"라 한다면, 여기 고인돌들은 크기면에서나 군락의 규모면에서 가히 "성인", "어르신" 급이다. 이렇게 웅장하고 위엄있는 고인돌 군락지는 정말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었다.

 

 

▲ 친절하게도 기사님은 500m를 앞두고 세워주셨다. 버스는 오른쪽 갈래길을 통해 마을로 들어갔다.

 

고인돌유적지 가는 길도 좌충우돌!

도곡리에도 고인돌공원이 있다. 광주터미널에서 화순군내를 향하는 모든 버스의 기사님들에게 여쭤보았다.

버스는 218, 318번이 간다고 안내서에는 나와있지만, 버스마다 경유하는 마을이 달라서 꼭 기사님께 확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

첫번째 버스는 가지 않는 버스라서 그냥 보내고, 그렇게 10분 넘게 기다렸을까. 다시 온 버스!

 

"기사님, 고인돌 유적지 가나요?"

"고인돌 유적지가 2개가 있는데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등 뒤에 한 줄기 땀이 흐르는...

마을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났던 건 뭘까...

 

"그 근처에 양동호 가옥이 있는데요"

"아! 월곡리! 타세요~ 그 동네가면 알려드릴게요"

 

친절한 기사님 덕분에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한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탔을까, 어느 갈래길에서 정차하시는 기사님,

왼쪽이 고인돌유적지라고 하신다.

감사 인사를 연신하며 내린 나는, 사람 하나 지나가지 않는 강아지조차 없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아, 정말 전체가 유적지인가보다. 곳곳에 보이는 경고문

 

▲ 드디어 도착!

 

 

▲ 관광안내소

 

고인돌 유적지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고인돌 유적지를 찾은 관광객들이 좀 있었다.

이들의 특징이라면, 모두 자가용을 갖고 왔다는 거다.

 

자동차로 보면 쉽게 볼 수 있기도 하겠지만,

고생고생해서 보는 고인돌은 더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동생이 문자로 말하더라.

"언니, 그 돌들 기억해서 뭐하려고?"

 

응? 그게 말이지...

 

"세계의 돌이니까 기억하련다~"

 

그냥 돌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이니까.

 

 

고인돌 유적지로 향하는 길은 황량함 그 자체다.

혼자 걷는 길이라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이 길이 폭이 넓은 이유는?

 

그렇다.

 

차가 다니기 때문이다.

사람인 나는 한적한 산길을 걷는 기분으로... 서서히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처음엔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다보면 난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 가야할 방향을 확실히 말해주는 표지판

 

△ 고인돌 선사마을

 

아이들의 즐거운 역사 배움터, 고인돌 선사마을

고인돌 선사마을에서는 선사마을 체험도 할 수 있다. 지금은 동절기라서 운영은 하고 있지 않은데,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캠프라고 알고 있다. 장신구체험, 민무늬 토기체험, 신앙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추운 겨울날 찾아가면 어린이들은 좀 실망을 할 것 같다. 얼른 꽃피는 봄이 와야 이곳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이 닿을텐데..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할 봄이 기다려진다.

 

 

 

▲ 나란히 서 있는 선사시대의 무덤과 현재의 무덤

 

혼자 걷다보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난 지금 선사시대의 공동묘지를 걷고 있는 거란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거다.

그래도.. 돌 보다는 봉분있는 묘가 더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 이윤 뭘까.

과거와 현재의 무덤을 동시에 보니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며,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당연하건만...

 

 

 

 

▲ 쉼터로 올라가는 계단

 

 

 

△ 방문객에게 인사를 하는 장승

 

 

 

 

 

▲ 번호 표시가 되어있는 고인돌

 

걷다보면 만나는 이름없이 번호만 붙여진 고인돌들.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벌어질 뿐이다.

이렇게 돌을 옮기기도 쉽지가 않았을텐데, 과거에 이들의 노력도 참으로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훼손되지 않고 이리 발견되어서 지금 우리가 이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고...

얼마나 다행인가,

청동기 시대에 그들이 남긴 흔적을 지금 우리가 그대로 보고 있으니...

 

 

 

 

 

 

 

▲ 곳곳에는 덜 녹은 눈들이 보이고

 

 

▲ 저수지의 물도 꽁꽁 언 겨울날

 

 

총 52기의 고인돌이 밀집된 관청바위군

효산리 고인돌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2003년 시굴조사 결과 장축 5m이상이 고인돌 7기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가장 규모가 큰 고인돌은 장축 530cm, 단폭 440cm, 두께 360cm로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고임돌 외에 남쪽면에서 돌을 구획하여 깐 구획석이 확이되었다고 한다. 고인돌을 축조하기 전에 대형 덮개돌 밑을 돌아가면서 받침돌로 배치했고 토층을 평탄하게 조성한 점은 고창이나 강화 고인돌과는 차별화 되고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탁자식 고인돌과 기반식 고인돌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볼 수 있다.

 

 

 

 

 

 

 

△ 고인돌끌기 체험

 

 

 

 

 

△ 채석장 모습

 

 

효산리 모산마을에서 월곡제, 춘양면 대신리로 넘어가는 보성재 양쪽 계곡에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 유적지. 청동기 시대의 남방식 지석묘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주변에는 고인돌 덮개돌을 채석하였던 암벽에 흔적이 남아있어서 고인돌의 축조과정도 쉽게 알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대신리 산 중턱에는 길이 7미터의 약 200여톤이 되는 거대한 상석이 있는데, 이 돌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규모라고 한다.

 

이 지역은 좁은 지역에 고인돌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는 점과 100톤 이상의 커다란 고인돌이 수십기가 있고, 280여톤의 초대형 고인돌이 있다는 점. 수로도 방대하며 여러 개의 받침돌을 지상위에 짜 맞춘 지상석곽형, 바둑판 형태의 기반식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있다는 점, 축조 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이 함께 존재하는 등 고인돌의 기원 및 성격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는 점 및 다른 유적보다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이유 등으로 2000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화순 고인돌유적지.

리와 리를 잇는, 산 중턱까지 펼쳐져있는 고인돌의 분포에 놀라기만 했다.

 

마을 곳곳의 길 이름도 "고인돌", 곳곳에 있는 문화재보호표지판이 이채롭기도 했고,

마을 전체가 마치 문화재 마냥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넓어서 난감하긴 했지만, 다 다른 모양으로, 그렇게 세월을 이겨온 돌의 모습을 보다보면 정이 가기 마련이다.

 

세계문화유산이 안되었으면 너무나도 억울하지 않았을까?

다행이다,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그리고 이렇게 버스로 도보로 찾을 수 있어서 더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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