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경상도

멸치 한 마리=아이스크림 하나 값, 죽방렴을 다녀오다

꼬양 2010. 11. 10. 07:30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원시형태의 어로 포획방식인 죽방렴. 이제는 명승지로 지정되었는데요.

혹시 죽방멸치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요? 멸치 한 마리에 아이스크림 한 개 가격이 된다는, 2kg에 38만원이라는 큰 금액(더 올랐으려나...)이지만서도 없어서 못 판다는 그 죽방멸치.

죽방멸치를 잡는 죽방렴, 죽방렴이 있는 남해의 지족해안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남해군 지족 해안가 일대 갯벌

 

경남 남해군 삼동·창선면 지족일원에는 죽방렴 23곳이 있습니다. 이 23곳은 국가지정 명승 제71호로 최근에 지정되었구요.

갯벌에서는 낚시가 한창입니다. 여름이면 해양소년단 등 여러 단원들이 갯벌체험을 하는 곳이기도 하죠.

어렸을 때, 이런 단원 활동 참 많이 했는데... 그때 생각이 문득 떠오르네요~

 

죽방렴을 관람할 수 있는 다리

 

경남 남해군 창선섬과 남해섬을 이어주는 다리 밑 지족해협에 넘실대는 바닷물이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목에는 어김없이 멸치잡이를 위한 ‘죽방렴(竹防簾)’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요.

참나무 말목과 대나무를 주재료를 발처럼 엮어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에서 죽방렴이라고 불렸는데, 대나무살(어사리), 조선시대에는 "방전"이라고도 했습니다.

 

 

 

 

 

 

지족해협은 남해군의 창선도와 남해읍이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곳으로 물길이 좁고 물살이 빨라 어구를 설치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백여개를 개펄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흐르는 방향과 거꾸로 해서  V자로 벌려둡니다. 사진에서는 약간 휘어진 브이자 형태로 대나무 발 그물이 설치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기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로 된 임통

 

참나무 말뚝을 V자로 박고 대나무로 그물을 엮어 물고기가 들어오면 V자 끝에 설치된 불룩한 임통(불통)에 갇혀 빠져 나가지 못합니다. 임통은 밀물 때는 열리고 썰물 때는 닫히게 되어 있는 구조인데요.

어쨌든,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한 고기는 대나무발 그물때문에 방향도 바꾸지 못하고 물살에 떠밀려서 이렇게 임통에 들어오게 됩니다. 사람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기가 노닐다가 제발로 들어오는 이런 어업, 아마 세계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하루 두 차례 멸치를 잡는다고 합니다.

 

 

임통의 입구를 봐도 참 비좁고, 물살도 거세기에 고기는 아예 나갈 엄두도 못낼 것 같습니다. 

 

멸치를 잡기 위해 설치한 죽방렴이지만 멸치만 걸리란 법은 없죠. 제일 먼저 걸리는 어종은 멸치, 삼치, 꽁치가 되구요, 마지막에 걸리는 것은 의외의 어종인 갈치입니다. 죽방렴을 통해 잡은 갈치라?

상상이 가지 않죠? (이때, 멸치보다 더 갈치에 끌립니다.)

 

 

 

하루 두 차례 멸치를 건져내는데, 이때  뜰채를 이용합니다. 배를 원통 어장옆에 대고, 대나무 발에 낸 작은 문을 통해 들어와서 멸치를 잡는데요.

 

어부는 곧바로 물고기를 퍼 올리는 게 아니라 제일 먼저 발통 안에 들어온 쓰레기나 불가사리·해파리 같이 해로운 생물 등을 먼저 건져내고, 그 다음 말목에 매달아 두었던 후리그물을 펴서 사목 옆의 말목에 세워서 묶어두고, 나머지 한쪽으로 발통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고기를 모읍니다. 그 다음 죔줄을 잡아당겨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구요.

 

이어 후리그물 안의 물고기를 퍼서 둥우리에 담습니다. 잡힌 물고기의 양이 적을 때는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하지만, 많을 때는 2~3명이 분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어느 죽방렴 한 곳에서는 배를 옆에 대고 멸치를 떠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죽방렴 하나면 이 동네에서는 큰 부자라고 합니다. ^^; 때문에 대를 이어서 물려주고 물려주고 그렇게해서 이렇게 어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이때 웅성거림이 들립니다.

"에잇! 나도 직장이고 뭐고 간에 여기서 죽방렴이나 하나 할까!! 서울에서 뭐하는거야!"

 

그럴 수만 있다면 오죽 좋을까요... 죽방렴 팔려고 내놓은 사람도 없는 걸요 -_-;

살 수만 있다면 저도 사고싶습니다.

 

 

비싸도 남해 죽방멸치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일반 멸치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 죽방렴, 조업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멸치를 잡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밥상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멸치는  ‘정치망(定置網)’을 이용해 한 번에 수십 t씩 대량으로 잡아올립니다. 즉, 현대적 조업방식이죠.

 

이 죽방멸치는 밀물과 썰물을 따라 멸치가 이동하는 물목에 죽방렴을 설치하고 고기가 들기만을 기다리는 자연순응형 조업방식이기에 일단 생산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랍니다. 고기가 스스로 들어와야 하기에 짧게는 2∼3일, 길게는 1∼2주씩 멸치가 한 마리도 들지 않아 허탕을 치는 날도 있고, 오랜 기다림 끝에 멸치가 들어도 썰물 때 사람이 직접 죽방렴에 들어가서 멸치를 떠내야 하므로 물때가 맞지 않으면 한밤중 작업을 불사하기도 한답니다.

 

그물에서 멸치를 털어내는 과정이 필요치 않아 멸치의 육질과 비늘이 상할 우려가 적고, 가공시설이 위치한 포구에서 죽방렴까지의 거리가 평균 수십∼수백미터에 불과해 삶기 직전까지도 멸치가 퍼덕일 정도로 높은 선도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특히 ‘참멸치’가 주종을 이루는 남해 멸치는 육지에서 인근 강진만으로 흘러들어오는 플랑크톤 덕분에 먹이가 많은 데다 지족해협의 빠른 물살에 단련돼 멸치의 육질이 단단하기도 하니, 맛은 이미 보증되어 있는거겠죠.

 

 

 

 

죽방멸치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잡힐때만큼이나 유통과정도 남다른데요, 주말이면 고급차를 타고 온 도회지 사람들이 트렁크 가득 사가는 바람에 죽방멸치는 ‘외제차 타는 멸치’로도 통한다고 합니다.

 

나도 많이 못 타보는 외제차를 멸치는 정말 자주 탄다는 말에 순간 욱하는군요.

멸치 주제에 외제차라니! -_-^

 

어쨌든, 대나무 그물이 펼쳐진 남해 바다에는 햇빛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싱싱한 멸치와 갈치들이 뿜어내는 은빛은 이 죽방렴이 아니면 볼 수가 없겠죠. 이곳에서는 일출보다도 일몰 풍광이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해양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은 죽방렴을 "남해안이 살아있다는 마지막 자존심"이라 표현했습니다.

바다를 사선으로 가르는 죽방렴과 그 위로 반짝이는 은빛 물결, 마치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비록 아이스크림 하나 가격이라는 멸치 구경은 못하고 왔지만서도, 멋진 바다와 조상들의 슬기로움을 말하는 죽방렴을 봤으니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 다음엔 죽방멸치 맛이라도 보고 올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