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전라도

우리민족의 정신의 불, 혼불을 떠올린 곳 - 최명희 문학관

꼬양 2010. 9. 2. 08:00

전주한옥마을의 골목골목을 누비다보면 소박한 한옥건물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왠지 고집 있어보이는, 그런 한옥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최명희 문학관이다. 문학관이라면 전국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는 나, 전주를 가서도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곳을 그냥 지나쳐 갔다면 울었을지도 모른다.

 

 

1930년대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은 소설 - 혼불

 

1930년대 말. 전라도의 한 유서 깊은 문중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지키며 치열하게 몸을 일으키는 3대와, 천하고 남루한 상민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애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혼불.

어두운 역사, 암울한 시절. 외형적으로는 국권을 잃고 일제의 탄압을 극심하게 받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조선말의 정신구조와 문화를 지탱하고 있던 이중적 시대상황 속에서, 처참하게 부서지고, 상처받고, 뒤집히고, 고뇌하며, 한없이 몸부림치지만 아름다웠던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복한 종부 청암부인은 흰 덩에 앉아 신행을 갖추면서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고 다짐한다. 무너지는 기둥을 곧추세우고 시부의 상을 치르며, 조카 기채를 아들로 입양한다. 몰락해가던 종가를 홀로 일으키고, 아들 기채가 손자 강모도 생산하여 가문에 대를 이었으며 저수지축조의 대역사도 마치지만, 합방당한 나라는 사라지고, 창씨개명의 강요로 가문보전의 위기를 당한다. 손자 강모는 효원과의 혼인에 좌절하며, 소꿉동무 사촌 강실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다가가지만, 이룰 수 없는 안타까움은 자포자기의 방관과 도피, 퇴폐적 낭만으로 자신을 내몰면서 방황한다. 버려진 고아로 태생이 천민인 춘복은 타고난 운명의 한계를 비관하면서, 신분을 바꾸고 뛰어넘을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 최명희 문학관 입구

 

최명희 문학관이라는 명패가 없으면 문학관이란 사실 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한옥 마을에 있는 한옥 중 하나로 여기고 그냥 스쳐갔을 법한 소박한 문학관.

 

▲최명희 문학관의 뒷문. 

 

사실, 뒷문으로 들어가서 앞문으로 나왔다. 뒤로 들어가서 앞으로 나오든, 앞으로 들어가서 뒷문으로 나오든 그게 뭐가 중요하랴. 그녀의 삶을, 그녀의 문학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그 감동을 느껴보자고 찾은 문학관인데 말이다.

 

 

최명희 문학관에서의 여러 행사들을 설명한 현수막들. 그 앞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커플 의자도 있고. 마치 햇빛을 받으면서 일광욕을 하라고 하는 듯... 휴식보다도 난 먼저 최명희를 만나고 싶었다. 얼른 발길을 문학관 안쪽으로 돌렸다.

 

 

최명희. 그녀의 사진이 제일 먼저 반긴다.

2006년에 개관한 이 문학관은 작품보다 작가 최명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때문에 전시관은 녹록치 않았던 작가의 삶과 그 흔적이 담겨있다. 최명희의 원고와 지인들에게 보냈던 엽서, 편지들을 비롯해 생전의 인터뷰, 문학강연 등에서 추려낸 말과 글로 이뤄진 동영상과 각종 작품에서 다시한번 그녀의 삶을 만날 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문학 말고는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다던 그녀. 일찍이 학창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면서 탁월한 감성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녀의 수필은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유명했다. 정말 부러울 뿐이었다.

진정한 작가란... 이런 글을 써야하는데... 난 뭐하고 있는 걸까, 괜히 마음만 무거워진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나서 받은 문화훈장. 그녀를 대신해 이 문학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훈장을 보고 있다. 하늘에서 그녀도 좋아하겠지.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이 문학관을 꼭 한번 들리는 것 같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최명희 문학관을 찾고 있었다.

 

 

그녀의 원고들. 봉투속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을까란 생각에 두근거렸다. 육필로 꼬박꼬박 원고지를 메워 장장 만2천장을 써내려갔는데... 마침표 하나하나까지 새긴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소설이 혼불이다.  

 

 

혼불을 읽은 때는 고등학교를 다닐때였다. 고등학교, 대학교 4년내내 붙어다녔던 친구와 함께 쉬는 시간 내내, 자율학습 시간에도 읽었던 소설이 혼불이었는데, 그녀의 필체에 반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읽게되었던 소설이었다.

이 문학관에서 다시 한번 작가의 생각, 사상을 만날 수 있었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작가는 말하고 있었다.

“어둠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도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한다. 어둠이야말로 삼라만상의 지신(地神)이며, 생명의 모태다. 빛이 밝게 빛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신의 불인 혼불은 사실은 혼돈의 시대에 더 환하게 타오를지도 모른다.”

 

 

최명희의 수필세계도 접할 수 있는 문학관. 수필은 작가의 삶의 텍스트요, 언어적 테스트다. 빛바랜 수필집들도 한 켠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문방오우. 수공의 작가였던 최명희와 함께했던 만년필, 칼, 철끈, 자, 가위.

 

 

그리고 그녀가 집필했던 방.

 

 

 

작가 최명희가 혼불에서 보여줬던 아름다운 우리말을 잊을 수가 없다.

가슴애피, 감시르르, 귀살스럽다, 깔담살이, 삭역하다, 수굿하다, 숭어리, 쑤실쑤실, 울멍줄멍, 욜랑욜랑...

 

 

그녀의 작품, 그녀의 문학세계, 그녀의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던 문학관.

문 옆의 작은 책상에는 방명록이 놓여져있었다. 방명록에는 여기를 다녀간 어린이들의 삐뚤빼뚤 글들이 남겨져있다. 나도 살짝 글을 써볼까 하다가 괜히 내 손이 부끄러워 감히 쓰질 못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최명희 문학관

 

최명희 문학관을 돌아보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깨닫기도 많이 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0여 년 전의 이야기를 할 뿐인데도 먼 시절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기만 한 혼불. 

초 스피드로, 걷잡을 수 없는 가속도로, 따라오지 못하는 자는 도태시키는 비정할만큼 야멸차고 단순한 시대 논리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게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언어를 조각조각 해체시키고만 있는 건 아닐까? 모국어가 해체된다는 것은 곧 민족 정서가 변질되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어왔고, 늘 염려해오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아름다운 문체와 모국어에 대한 숭고한 신념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나있다. 그녀가 꿈꾸던, 밝고 환하게 빛나는 혼불이 살아 있는 세상은 그녀의 작품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된다.